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몽쉘 효과 by 답게


약 2주 전, 엄니께서 대상포진 판정을 받으셨다.
처음엔 눈두덩이에 모기가 물린 줄로만 알고, 거 참 부위하고는 쯧쯧, 안타까워했는데
다음날엔 그 좁은 눈두덩이에 모기 자국 네 개가 보였고,
그 다음 날엔 심지어 이마까지 부어오르는 게 아닌가.

이건 모기가 아니라 독벌레다. 방을 소독하자, 난리를 피웠지만 수포는 관자놀이까지 퍼져 갔고,
엄니 친구분께서 이건 아무래도 대상포진인 것 같다는 언질을 주어 피부과에 갔었더랬다.
결과는 대상포진. 생각보다 꽤나 위험한 병이었다.

대상포진: 어릴 때 수두를 앓았던 사람 중 30% 정도에서 발병. 몸 안에 남아있던 수두균이 면역력이 약해진 틈을 타 신경을 타고 올라오는 것. 신경통과 함께 띠 모양으로 수포가 생김. 한쪽 신경으로만 타고 오기 때문에 좌우 대칭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눈코에 발병할 경우 시신경에 손상을 입을 수 있음.(심할 경우 시력을 잃을 수도 있음)
어린 아이들에게 수두균을 옮길 수 있기 때문에 대학 병원에서는 입원 치료를 권한다고 함.

의사 선생님께선 의사의 도움 50, 환자의 노력 50이 조화를 이뤄야만 병을 이겨낼 수 있다며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침대에만 누워있을 것"을 명하셨고
평소 운동이다 친목활동이다 뭐다, 집에 계시는 시간이 길지 않던 엄니는 졸지에 감금 생활을 하셔야만 했다.

침대에 누워 TV를 보는 것도 내원 후 닷새 후쯤에나 가능했을 정도이니.
엄니께 허락된 것은 오직 먹는 것, 자는 것. 이 두 가지뿐.
다른 억제된 욕망들이 식욕으로 발현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엄니 지인 중 대상포진을 앓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엄청난 체중 증가를 경험했다고 한다.)

약 복용으로 매 끼 식사를 챙겨 드시는 건, 좋은 현상이다.
▲ 꺳잎, 상추, 찐 양배추 쌈
두부조림, 콩나물 무침, 가지볶음, 오이생채, 깻잎볶음, 멸치볶음, 쌈장(왼쪽부터)


몸의 면역력을 높여야 한다며 매 식단에 채소와 된장을 포함시켰으니, 이 정도면 꽤나 완벽한 식단이었다.
작년 11월부터 1월까지, 나 역시 채소 위주의 식단으로 매 끼를 챙겨먹은 적이 있었다.
그 때, 세 끼를 다 챙겨 먹고도 운동 없이 6kg 감량 효과를 보았으니,
엄니 역시 채소식하는 2주 간 몸이 정화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은 셈이었다.

식사 후의 폭풍 간식만 아니었다면. 가능했을 게다.


발단은 채소를 사러 갔던 내가, 몽쉘을 사오면서부터였다.

약 잡숫고 입가심으로 하나 드시란 생각과 그날따라 무지 몽쉘이 땡겨 큰 의미 없이 집어왔을 뿐인데
"엄만 몽쉘보단 초코파이가 맛있는 것 같아"란 말에 다음날엔 초코파이를,
"두 개를 다 비교해보니 초코파이보다 몽쉘이 부드러워 맛있다"란 말에 다음날엔 몽쉘을
"몽쉘이 이렇게 맛있는 줄 처음 알았다"란 말에 그날부터 지금까지 매일같이 몽쉘을 사들이고, 먹어치우고 있는 것이다.
압지도 사무실 옆 가게가 과자를 할인해 판다며, 마누라가 잘 먹으니 몽쉘을 하루에 두 통씩 꼬박 꼬박 사 오셨더랬고
엄마와 난 TV를 보며, 때론 누워서, 때론 얼려서(크림은 역시 부드러워야 제맛이라며 냉동실 몽쉘은 곧 금지당했다)
끊임없이 몽쉘을 먹어치웠다.

난 밥 대신 몽쉘, 밥 먹고 몽쉘, 책 보면서 몽쉘, 외출하며 몽쉘, 자기 전에 몽쉘 몽쉘 몽쉘!
2주 간 미친 듯이 달렸다.

그러다보니 신체에 변화가 생겼다.
얼굴에, 턱부터 이마까지, 부위를 가리지 않고 뾰루지가 솟은 것은 물론
살은 좀 빠졌으나 배가 볼똑 나오는 증상에, 이건 뭔가. 갸우뚱하게 된다.

엄니는 얼굴에 보톡스를 맞은 것처럼 살이 통통하게 올랐고.
오늘이 마지막 몽쉘이야, 란 말이 무색하게 매일, 여전히 몽쉘을 흡입하고 있다.

호르몬의 장난인 걸 알면서도, 이건 몸이 원하는 영양소가 아니라
뇌가 미쳐서 입을, 혀를 농락하는 것이란 걸 알면서도
사랑하는 몽쉘을 끊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



미안 몽쉘. 오늘 난 선언한다.
넌 참 부드럽고 달콤하고 맛있는 초코 케이크지만 과해서 좋을 건 하나 없는, 정크 푸드일 뿐이다.
엄니 치료도 끝났겠다, 당분간 널 볼 일은 없겠지.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절대 널 맛보게 하지 않을 거야.
넌 너무 중독성이 강한 놈이니까.

뾰루지와 뱃살만 아니었더라면......
대체 나에게 왜 이런 거니, 왜! 크흑


'말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덧글

  • 쩌네정 2011/07/22 00:34 #

    ㅋㅋㅋㅋㅋㅋㅋㅋ 몽쉘효과ㅋㅋㅋㅋ 저는 한 때 '꼭 한 겨울에 이불 뒤집어 쓰고 퍼 먹는' 투게더가 너무 맛있어서, 겨울 내내 사다 날랐던 기억이 ㅋㅋㅋㅋ
  • 답게 2011/07/22 00:54 #

    사람마다 그런 게 하나씩은 꼭 있나봐요.
    전 몸 아프고 기운 없을 때 빅파이가 생각나요.ㅎㅎㅎ
    그 앙증맞은 파이 한통을 다 뜯어 먹으면 그제서야 눈이 좀 떠집디다;
  • 쩌네정 2011/07/22 16:06 #

    파이 한 통 ㅋㅋㅋㅋ 저는 최근에 트윅스 미니를 연속으로 3개씩 흡입중 ㅠㅠ
  • 2011/07/23 14:1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답게 2011/07/23 23:07 #

    재밌게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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